*앨런과 시몬 하트먼(Alan and Simone Hartman) : Christies에서 이분들의 소장품을 경매하였습니다.
Christies 1999년 10월 20일 Alan and Simone Hartman Collection of Regency Silver
Christies 2006년 11월 29일 Important Chinese Jade from the personal Collection of Alan and Simone Hartman
요나라 시대의 신발은 매우 희귀합니다. 전통적인 신발은 대부분 가죽으로 만들어진 부츠 형태였고, 왕가의 무덤에는 금과 은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기노시타 히로미가 『금빛 찬란자: 중국 요나라 제국의 보물』(907-1125), 뉴욕, 2006년 104페이지에 언급을 했듯이 "장화는 반유목민 성격의 거란 사람들에게 실용적이고 필수적인 신발이었고, 그들에게 따뜻함을 제공하고 비바람 뿐만 아니라, 말을 탈 때 피부마찰로부터 착용자들을 보호해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거란 사람들이 부츠에 부여한 가장 높은 가치는, 중국 문헌에 기록되어있기를, 11세기 송나라 황제와 요나라 황제들이 가죽 부츠와 기타 사치품들을 생일선물로 교환했었습니다.
얇게 망치질된 은 합금 판으로 만들어진 예들은, 여성 왕들의 무덤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신발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신발은 대초원 유목민의 이동성과 활발한 생활방식보다는 실내 생활에 대한 주인들의 애호를 암시했을지도 모른다. 거란 무덤 장식들은 또한 건축에 대한 중국의 영향을 반영했는데, Chen 공주(1018년 출생)의 무덤 방은 유르트(몽골의 게르 비슷한 집)모양이며, 무덤 문 위의 장식은 한족에게서 영감을 받은 진나라의 건축 양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신발 하나의 크기는 16.5cm로, 평균적인 유럽 여성(약 23~24cm)의 것보다 대략 3분의 1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는 당나라 말기 중국에서 나타났던, 발을 묶는 관습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 관습은, 요나라 시기 직전인 10세기 당나라 남부의 Li Yu 황제의 통치 기간에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는 귀중한 돌과 진주로 장식된 1.8미터 높이의 황금 연꽃을 만들었고 자신의 첩인 야오 니앙의 발을 흰 비단을 가지고 초승달 모양으로 묶고 그 연꽃 위에서 발 끝으로 춤을 춰달라고 그녀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그녀의 춤은 매우 우아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하려고 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발을 묶는 관습은 다른 상류층 여성들에 의해 다시 재현되었고, 그곳에서부터 점점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발을 묶는 관습에 대한 가장 이른 고고학적 증거들 중의 하나는, 1274년에 사망한 저우 부인의 무덤에 있습니다. 특히 잘 보존된 그녀의 해골과 뼈대는, 그녀의 발이 거즈 스트립으로 묶여 있었으며 그녀 옆에 함께 묻힌 아주 좁고 뾰족한 슬리퍼에 그 발이 딱 맞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파베르제 가문은 수많은 돌 신발들을 만들어냈는데, 그 중 적어도 하나는 이 물건과 눈에 띄게 닮아 있으며, 2015년 10월 14일 뉴욕 소더비에 나왔던 금박으로 장식된 아가트 보석 신발이 그렇습니다. 물론 길이가 7.5센티미터인 이 신발은 너무 작아서 실제로는 착용할 수 없으며, 그 대신 파베르제 소형 신발은 실제로는 말린 꽃을 담는 작은 용기나 책상이나 작은 테이블 위에 올리는 방향제 통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위로 솟아오른 이런 신발은 중국에만 유일한 것이 아닙니다. 중세 유럽에서 인기있던 뾰쪽한 구두 pigache나 인도 제국에서 비롯된 mojari도 있었습니다. 본 물건은 인간 발달사에 있어서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신발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회내에서의 협동과 경쟁 사이의 깨지기 쉬운 균형 뿐만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노력을 나타내는 어찌보면 겉보기에는 눈에 띄지 않는 그런 면이기도 합니다.
문헌 비교:
Mengdiexuan 컬렉션에 있는 끝이 뾰족한 비단 자수 신발은, Jenny F. So에 의해 그려진 Noble Riders from Pines and Desserts : 홍콩 중문대학교 미술관, 2004, 94-95쪽, II:4쪽, 54-55쪽에도 나와 있습니다. 저자는 "고고 발굴에서 나온 요나라 신발은 매우 희귀하다"고 언급했으며, 유일한 예는 내몽골 린둥 지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저장성 란시성 미산 지역에, 판기밍과 그의 아내의 송나라 남부의 무덤에서 발견된 끝부분이 깊게 올라간 비단띠 여성 신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Women’s Adornment and Dress throughout Chinese History : 1988년 타이베이, 288쪽, 408호.
저장성 취저우에 있는 송나라 학자 Shi Shengzu의 무덤에서 발굴된, 은화 한 켤레(길이 14cm)와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취저우시 박물관에 있는 첫 번째 부인인 뤄솽솽의 이름이 새겨진 밑창입니다.
윤허 야오가 그린 신장성 투르판 지역의 381호 아스타나 무덤에서 출토된, 당나라 비단띠 신발 한 켤레와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 The Changes of Toe-Up-Warped Shoes in Different Dynasties from the Perspective of Archaeology, 2019, 그림 2.
수 입 국 : VIENNA AUSTRIA